4m를 위한 헌사
추모 에세이
기타
봄이 되었고 개학을 했습니다. 이 글이 기사로 나오는 시점은 아마 개학을 한 지 약 한 달 뒤가 되겠군요. 신입생이라면 모르겠지만 2,3 학년 학생들은 뭔가 달라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혹시 올해 2월 졸업식에서, 먼저 떠난 인연들과 배움터지킴이 고 정상수 씨를 위한 묵념이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분의 성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침에 본 선생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기억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안전조끼를 입으시고 한 손에는 형광 봉을 쥐고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한 채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맞이해 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해룡고등학교의 정문과 그 건너편 길 사이에는, 4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횡단보도는 스쳐 지나가는 짧은 길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8년의 아침을 지켜왔던 곳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잠시, 제가 본 그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더 이상 그분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 볼걸, 저분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떠나신 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옆집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까지 해룡고에서 함께 근무해온 직장 동료이자 그분의 각별한 누이동생이었던 박영임 씨에게 여쭤보았습니다. 매일 만난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라버니, 직장동료로서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린시절을 함께했고, 지금까지 이곳에서도 함께 일하면서 보아온 그분은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더 강조할 수 없을 만큼 박영임 씨가 세 번이나 거듭 말할 정도로요. 주말마다 박영임 씨와 함께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즐기기도 했고, 평소에 약 한 번 안드실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커피를 그렇게도 좋아하셔서 언제나 박영임 씨가 경비실로 찾아오면 믹스커피 한 잔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도 그가 떠난 지금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는 작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 여한 없이 살았다고, 나보다 더 필요한 곳에 쓰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한 그는, 마지막까지 다른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며 누군가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났습니다. 그날이 바로 성탄절이었다는 사실이 그분의 선택과 맞물려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길이지만 이를 학생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8년 동안 웃음으로 자리를 지켜 주셨고, 마지막까지 모든 걸 내어준 뒤 갈 길을 간 사람. 평소에 고맙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며 항상 감사하게 삶을 살아가셨던 사람. 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분과 같은 우리들의 이웃을, 그 인연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아침도 등교하며 그분의 빈자리를 느껴봅니다. 항상 ‘안녕하세요’로 인사드리는 아침이 저는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야 후회하며 한 번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감사합니다’를 이제라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이라 아쉬운 글일 수 있지만 마음만큼은 전해지기를 바라며, 인터뷰에 응해 주신 박영임 씨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