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기억, 여든까지 가지 못하는 이유

유아 기억상실증에 대하여

과학·기술

이효민

8/31/20261 min read

a close up of a human brain on a black background
a close up of a human brain on a black background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가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20대까지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과 옛 친구들을 취재했는데, 이때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서로의 기억이 다른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필자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7살 때, 둘째 동생과 장난을 치던 중 돋보기의 날카로운 부분에 손이 베인 적이 있다. 얼마 전 이때 생긴 미세한 흉터를 발견하고 가족들에게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니, 막냇동생이 둘째가 아닌 자신 때문에 다쳤다는 말을 했다. 옆에서 그 상황을 보았던 당시 3살의 동생이 이를 자신의 경험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아주 어릴 적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유아 기억상실’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이 처음 ‘엄마’라고 말했을 때와, 첫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왜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이 사라지는 건 부정적인 걸까?

_기억은 갑자기 사라지는 건가요?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의 바우어 교수팀은 3세의 어린이가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 때의 대화를 녹음하고, 6년 후 그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5세 6개월 된 어린이는 80%, 7세 어린이는 60% 정도 기억했는데, 7세 6개월 때는 40% 이하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_유아 기억상실은 왜 일어나는 건가요?

유아 기억상실을 설명하는 3가지의 가설이 있다.

먼저, 유아 시기에는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비언어적 방식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보았을 때 머리로는 ‘원숭이를 보았다’는 문장을 기억하지만, 유아들은 원숭이의 생김새, 냄새, 소리와 같은 감각 요소만을 중심으로 경험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유아기에는 기억을 재생하는 능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에서도 ‘유아 기억상실’이 발견되며 설득력을 잃었다.

다음은, 해마 발달과 뉴런 증식을 통한 설명이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는 4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는데, 이 시기에 뉴런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결합하면서 기존에 생성되었던 뉴런의 연결 회로를 끊고 이전 기억을 파괴한다는 가설이다.

동아사이언스 우아영 기자

교수와 연구팀은 이 가설을 입증하고자 2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어른 쥐를 수조에 넣어 목적지까지 헤엄치도록 훈련시켰다. 그리고 훈련이 끝난 쥐의 절반을 데려다가 해마 뉴런 재생을 2~3배 증가시켰다. 어른 쥐의 뇌를 새끼 쥐의 뇌로 돌려놓은 셈이다. 그러자 목적지까지 헤엄치는 길을 잊고, 다시 처음부터 헤매는 경향을 보였다. 새로 만들어진 뉴런이 기존의 기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반대 과정도 실험했다. 새끼 쥐가 상자에 들어갈 때마다 전기자극을 줬더니, 쥐들은 점차 이를 기억하고 상자를 피하게 되었다. 이후 훈련이 끝난 새끼 쥐의 절반에게 특수 처리를 해 뉴런 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작했다. 어른 쥐의 뇌로 ‘교체’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4주 후에 다시 상자를 보여주자, 뉴런 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쥐들은 여전히 상자를 피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쥐들은 과거를 잊고 다시 활발하게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즉, 뉴런이 증식될수록 기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설은 어릴 적 기억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남아있지만, 인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 니컬러스 터크-브라운 교수팀은 해마가 개별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생후 4~25개월 된 영아 2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아기들에게 얼굴, 풍경 등의 사진을 보여준 다음 나중에 다시 사진을 보여줄 때 뇌 스캔을 하는 동시에 시선 반응을 추적해 특정 사진에 대한 기억 여부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아기들의 해마는 생후 12개월때부터 개별적인 경험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는 ‘아기가 특정 사진을 이전에 본 적이 있으면 다시 볼 때 더 많이 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아기가 옆에 있는 새로운 사진보다 이전에 본 사진을 더 많이 쳐다본다면 아기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유아기의 기억 형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때 형성된 기억을 인출하는 과정이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아 기억상실'을 설명한 것이다.

필자는 3가지 가설 중 뉴런 증식에 주목한 두 번째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본다. 특히 세 번째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험의 경우, 테스트가 단 60초의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유아 기억상실증은 망각이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_그럼 유아기에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의미가 없나요?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앞서 말했듯 비언어적 형태로 남아 흐릿하게, 무의식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친다. 유아기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큰 우울감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성인이 되고 나서도 우을증이나, 불안 등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_저는 3살 이전의 기억이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이 글을 읽으며 “난 3살 전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짜 기억’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워싱턴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팀은 24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어릴 적 추억이 적힌 소책자를 각각 읽게 했다. 소책자에는 참가자의 가족에게서 직접 들은 어린 시절의 실제 추억 3가지와 ‘다섯 살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 다시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는 만들어진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참가자는 소책자를 다 읽고, 자신이 직접 기억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기억나지 않는 내용은 모르겠다고 하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참가자의 25%가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기억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가족을 다시 못 볼 것 같아서 너무 놀랐다.”, “길을 잃고 걷다가 파란색 옷을 입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울고 있는데 직원이 나를 발견해 미아 보호소로 데려다주었다.” 같은 내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로프터스 교수가 이 실험을 한 이유는 ‘에일린 프랭클린’ 사건 때문이었다.

가정주부였던 에일린 프랭클린은 우연히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가, 의붓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끔찍하게 죽이는 장면을 기억해 냈다. 무려 20년 전의 일이라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의붓아버지는 즉각 살인죄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에일린의 기억이 당시의 사건 기록들과 너무나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일린의 기억은 로프터스 교수에 의해 가짜 기억임이 밝혀졌다. 교수는 당시 에일린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최면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을 바탕으로 에일린의 기억에 의문점을 가졌다. 교수는 위 실험을 바탕으로 가짜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상상하면 할수록 세부적인 내용을 덧붙여 기억을 부풀린다는 결과를 내어 에일린의 기억이 당시 기사를 보고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덕분에 의붓아버지는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에일린은 무심코 언론의 오보로 밝혀진 사실까지 자신의 기억으로 주장했던 것이다.

_기억이 없는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요?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는 현재의 우리는, 과연 과거의 나와 같은 개체라고 할 수 있을까? 위장 내벽 세포는 2시간 반 정도면 살다가 죽어 새로운 세포에게 자리를 내주고, 적혈구는 3개월을 살고 교체된다. 신경 세포는 한번 출생하고 다음 해부터 더 이상 분열하지 않지만, 간세포는 성장이 끝난 이후에는 분열을 멈추었다가 간의 일부가 파괴되었을 때 다시 분열을 시작하여 없어진 부분을 보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 체세포는 25~30일 정도 살며 1년 정도면 몸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낡은 세포는 죽어 없어지고 새 세포로 교체된다. 세포도 전혀 달라지고 기억도 없는 나는 과연 과거의 나와 같은 개체일까? 아니면 모습만 비슷할 뿐 실제론 다른 개체일까? 우리 몸은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즉, 초당 380만 개 이상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 논의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이 있다.

Wikipedia ‘Ship of Theseus’

이는 ‘배’이다. 이 배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다른 새로운 부품들로 교체되어 있다. 이 배는 바로 ‘테세우스의 배’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을 물리친 후 타고 온 배를 사람들이 소중히 여겨 보존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낡은 부분들을 새것으로 바꾸어 갔다. 그러다 마침내 배의 모든 부분이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여전히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렀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과거와 현재의 구성 요소가 다른데 이를 여전히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_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일까?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이 사람은 이를 저주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만 잊고 싶은 기억마저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하며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렇기에 누구나 어렸을 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있을 것이다. 유아 기억상실증은 이제는 성장한 우리를 위한 하나의 축복 같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박정열 교수 (2024-08-23). “[윤리글] 나의 기억,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기억의 왜곡. [aSSIST University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연합뉴스. “유아기 기억 못 하는 이유는 기억 형성보다 인출 실패 때문”. The Science Times. 2025-03-24.

정자영 (2025-02-02). “형상 vs. 물질 : 테세우스의 배에 깃든 정체성의 비밀”. [brunch].

ibs (2017-07-23). “죽어야 사는 세포의 운명 : 세포의 일생-분열과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ibs 기초과학연구원 Institute for Basic Science].

CrashCourse (2016-06-28). Personal Identity: Crash Course Philosophy #19. YouTube.

CrashCourse (2016-07-12). Arguments Against Personal Identity : Crash Course Philosophy #20. YouTube.

brown monkey sitting on gray concrete floor during daytime
brown monkey sitting on gray concrete floor during daytime
person sitting on chair beside escalator
person sitting on chair beside escalator
Title page of "ship of theseus" by v. m. straka.
Title page of "ship of theseus" by v. m. straka.